겨우 제대로 된 말을 하게 되었을 때 들었던 얘기는 '침묵은 금' 이라는 얘기였다. '가만히 있으면 반은 간다', '긁어 부스럼', '입방정' 같은 말들은 끊임없는 자기검열을 요구하고 결국 아주 많은 경우에 해야 할 말이나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릴때는 글쓰는 것이 즐거움이었는데 중학교에 가니 내가 쓰는 글은 성적에 상관없는 '쓸데없는 짓'이 되었다. 다행히 쓸모있는 짓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쓸데없는 짓을 더 다양하게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 결과 악기를 연주하는 재미를 보았다. 중학교 2학년 때였던가 클래식 기타를 배운지 좀 되었을 때 생일이 되었는데 워낙 사춘기가 세게 와서 영 생일을 축하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이미 방 안의 가벽들은 목적없는 주먹질로 거의 다 뚫려있었고 나는 화풀이 상대를 찾다가 기타를 집어 들었다. 코드를 배우지 않고 클래식음악으로 연주를 시작했기 때문에 막상 기타를 들면 칠 수 있는 곡들이 너무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그날은 여섯줄을 한 손가락으로 다 잡고 되는 대로 그리고 가능한 한 큰 소리를 내면서 연주했다. 한참 치고 있는데 방문밖에 동생과 어머니가 나타났다. 보통 같으면 조용히 하라고 했겠지만 그날따라 내가 너무 그 행위에 몰입해있었는지 다들 별 얘기를 하지 않았다. 아마도 연주로 말로 할 수 없는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감정은 그때 처음 느낀 것 같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그 감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아주 쉽게 조용히 하라는 말을 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한다. 위하는 마음이라 생각하면 고맙지만 그 부작용은 워낙 광범위하다. 연주를 남들 앞에서 하는 사람은 청자의 어떤 감정을 대신 표현한다. 예술과 오락의 바닥에도 공감이 있고 그 공감은 인류가 정신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다.
겨우 악기로 몇 마디 하게 되었는데 말을 못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