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는 떠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모두 실패할 것이고 후회 속에서 살게 될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저주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그 말투는 차분했고 분노와 좌절의 감정보다 예언에 가까운 확신으로 담담하게까지 느껴졌다. 마을을 떠나가는 차 뒷자리에서 그를 끝까지 바라보았다. 그의 입은 계속 무언가를 말하는 것 처럼 보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뒷걸음질을 치는 것 처럼 보였다. 그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그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얼마 후 그의 시신이 우리가 헤어졌던 곳 근처 절벽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안도를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도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느라 그의 대한 생각을 거의 못했다. 그의 소식은 떠난 이들에게는 어떤 종결감을 주었다. 그의 죽음은 우리가 떠난 곳을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돌아갈 수도 없는 곳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제 앞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사실 어디가 앞인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절망감 속에서 서서히 썩고 싶지 않았던 것 뿐이다. 어렵게 취직한 가게는 손님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었다. 해야 할 일을 하고 나선 카운터에 서서 물끄러미 정문을 바라보는 것 외엔 할 일이 없었다. 한 시간, 어떨 땐 두 시간도 한 자리에 꼼짝없이 서서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 손님이 들어와 일을 하게 되어도 워낙 가만히 있다가 보니 손님의 주문에 더디게 반응하게 되었다.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문득 들었지만 특별히 열심히 할 거리가 없었다. 그저 맡은 일을 미리 준비해두고 손님의 요구에 너무 느리지 않게 대응하는 것. 그 일에 익숙해지는데는 사실 몇 일도 걸리지 않았고 문을 바라보는 시간은 점점 더 길어졌다. 문의 구석구석 작은 요소들을 뜯어보는 동안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문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생겼다. 갑작스런 방문에 흠칫하며 손님맞이를 하려다가도 실은 아무도 가게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와 실망을 동시에 느꼈다. 다양한 연령, 인종, 성별의 사람들이 발자국없이 문을 드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절벽에서 떨어진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보통의 유령들이 문을 통과하자마자 없어졌던 반면 그는 끼익거리는 나무문을 열고 저벅저벅 발소리를 내며 카운터로 다가왔다. 눈을 맞추자 이내 마을을 떠나던 순간으로 순식간에 돌아갔다. 떠나던 날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가 내게 만들어줬던 세상은 그 날이 끝이었다. 작은 사람에게 그 정도의 세상을 떼어가면 남는 게 많이 없다. 그 후론 계속 유령들과만 대화했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계속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반면 유령들은 차분하고 정직했다. 덕분에 얼마 안 남은 나도 그들과 큰 어려움 없이 어울릴 수 있었는데 아마도 이때 유년 시절 이후 처음 인간관계에서 즐거움을 느꼈던 거 같다. 나무에 매달린 과일들이 거무죽죽하게 변할 때쯤, 까마귀가 더 이상 그 과일을 원하지 않게 되었을 때 쯤, 그리고 내가 유령처럼 소리없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 가게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언가가 찾아왔다. 보통 유령들은 흐릿하게나마 형태가 있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이렇다 할 모양보다는 기운으로 느껴졌는데 그마저도 그렇게 강한 느낌은 아니었다. 확실히 느껴지지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난 이후 안절부절 할 수 없었다. 계속 마음에 걸리던 일에 대한 어떤 소식이 들려온 것처럼 마음이 심하게 요동쳤다. 특별한 내용없이 그저 무게감에 짓눌리고 있자니 계속 마음이 불안했다. 소리를 내어 소통하려고도 해보고 가게 안을 일부러 휘젓고 다녀보기도 했는데 아무 소용없었다. 한 번 그런일이 있고 나니 계속 미지의 존재가 나를 따라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집에서 잠글 수 있는 모든 문을 잠그고 커다란 담요를 뒤집어 쓰고 있어도 그 불안함이 가중될 뿐이었다. 그 존재가 나타난 이후 유령들도 안 보이기 시작했다. 답답함을 털어놓을 존재조차 아예 없게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나는 바닥에 붙어서 살다 싶게 되었다.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었다. 너무 스트레스가 심했기 때문에 그 상황에 대해 어떤 특단의 조치를 내리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떠나온 곳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서 가장 오랫동안 떠날 수 있는 원양어선편을 알아 보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바다에서 흔들거리는 배 위에 있으면 끝도 없이 짓눌러 내려오는 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 같았다. 다행히 나를 말릴 사람도 걱정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덫에 걸린 발을 스스로 잘라내기로 했다. 배를 타기로 한 날 가지고 있던 거의 모든 물건을 집 앞에 내어놓고 집주인에게 찾아가는 길이었다. 커다란 트럭이 멀리서 다가오는데 내게 가까워질 수록 양쪽으로 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보기도 전에 트럭이 파도가 무너지듯 내 위로 쏟아졌다. 잠시 눈 앞이 검게 변했는데 그제야 나를 따라다니던 존재의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은 내가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보던 얼굴이었다. 내가 무거워지다보니 그걸 내 밖에서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나를 내게서 떼어내다보니 트럭아래 깔린 나를 보는 것도 가능했다. 나는 사고현장을 한참 보다가 홀가분한 기분으로 집의 반대쪽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비가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는데 옷이 젖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