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테이프에 날벌레들이 잔뜩 붙어있다.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니지만 내 입에 들어가기 전에 잡아준 테이프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고마워도 해 줄 수 있는게 별로 없는 상대라서 혼자 고마워하고 만다. 모두가 식물이나 진동같은 개념이라면 서로 해 줄 수 있는 일이 많을텐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양말도 안 신고 신발을 신어야겠다. 신발에 피가 흥건 할때까지 걷고 또 걸으면 세상 모든 아이들을 다 만나고 중간에 뼈도 갈릴 것이다. 아무래도 살보다는 뼈니까 뼈를 취하는 쪽으로 간다. 사람들이 계단을 비칠비칠 올라가는 모습이 꼭 해질녘 연기같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함께 보고 들이 마시고 있기 때문에 사실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떠나는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제는 닫혀있던 출구가 오늘은 열려있다. 희망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비가 한참 퍼붓더니 벌레 소리가 싹 사라졌다. 가장 곤란한 위치에 유기된 고양이 새끼를 본적이 있다. 동물의 새끼는 가장 잘 들리는 주파수의 소리를 집요하게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세상이 멀쩡히 돌아가는데 종말이 눈 앞인 것 같은 연출을 한다. 어쩌면 이 소리가 가장 의미있기 때문에 성체가 된 동물들도 그 소리를 흉내낸다. 이미 성대의 모양이 성장을 통해 변형되었고 굳어버렸지만 어떻게든 그 소리를 흉내 내려고 한다. 그게 실제 음성이든, 몸짓이든, 아니면 대상없는 사보타쥬인지는 상관없다. 끊임없이 어떤식으로든 신호를 보낸다. 외계인의 원형이 이런 바램에서 나왔다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눈을 크게 뜨고 사려깊으며 언제든 뻗을 수 있는 팔과 다리가 있다면. 물론 외계인의 입장에서 우리는 논외의 존재이겠지만 이런 생각은 늘 약자의 몫이다. 마당에 축구장이 있는 사람은 축구공이 하나 요행으로 생겼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다행히 상상은 공평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상상력으로 살아남았다. 상상력이 데이터베이스라고 하는 사람들은 기계문명에 지배당하는 절망적인 미래를 꿈꾸지만 상상을 할 수 있는 존재가 학살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오늘도 날벌레들을 잡기 위한 테이프를 갈아 끼우고 좋아하는 영상을 틀어 넣고 술을 마셨다. 내가 찾던 미확인비행물체는 그냥 날벌레였었나보다. 시력검사를 하러 가는 김에 옛날 짜장을 먹었다. 짜장의 역사를 생각하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두가 열광하는 무언가는 역시 전부 사람이 자잘하게 하던 일에서 비롯되었다. 대만에서 먹은 자장면은 풋콩 냄새가 진했다. 나는 자다가 말고 밤에 한 번 더 냉장고의 반찬을 찾았다. 나의 결핍을 나보다 먼저 눈치 챈 사람이 내게 유예를 주었다. 감사했지만 표현을 못했고 아직도 후회가 남아있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섬에 등대를 두고 많은 사람을 위한 희생을 금전적인 보상으로 대처한다. 애초에 찾을 일이 없으면 좋겠다. 어차피 들리는 소리는 거기서 거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