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고 싶은 얘기들이 있었는데 쭈뼜대다가 그냥 나왔다. 조금 걸어가다가 그래도 이렇게 가는 건 아닌 거 같아서 발길을 돌렸다.

길거리에 전단지들이 잔뜩 뿌려져 있었는데 내가 아는 얘기는 하나도 없었다. 너무 모르는 얘기들이라 눈길이 가지도 않았다. 전단지를 낙엽처럼 툭툭차며 걷다가 뭔가 뭉툭한 게 발에 채였다. 그 물건은 몇 바퀴 구르다 갑자기 세로로 섰는데 얼핏보니 물고기 인형이었다. 인형을 주우려 허리를 숙였는데 인형의 눈과 눈이 마주쳤다. 물고기인줄 알았던 인형은 내 얼굴모형이었는데 이상하리만큼 세밀한 부분까지 내 얼굴을 닮아있었다. 눈 위에 이상하게 난 눈썹이라던가 볼 한쪽에 어릴적 수두를 앓은 자국같은 것들이 거의 같은 모양으로 닮아있었다. 그 묘사에 놀라느라 내 얼굴인형이 왜 길 한복판 전단지 밑에 깔려 있었는지 생각할 틈도 없었다. 인형을 주워 허둥지둥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길에 서서 마냥 들여다보기가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잠깐 잠깐 꺼내어 보기만 했다. 어떻게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집에 도착하자 식탁 의자에 앉아서 다시 인형을 꺼내 보았다. 그런데 이번엔 그 인형의 입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나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머리가 지끈하면서 살짝 열이 나는 것도 같았다. 한동안 인형을 보지 못하고 굳어있다가 다시 인형을 보니 내가 내려놓았던 곳에서 세뼘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동그란 모양이었기 때문에 입이 조금씩 움직이다 보니 저기까지 굴러간 모양이었다. 난 개구리나 쥐 같이 작은 동물을 잡듯이 그 인형을 조심스럽게 잡아올렸다. 그러자 이번엔 ‘억’하고 소리가 났다. 내가 낼 법한 단말마가 내 입과 닮은 인형의 작은 입에서 나왔다. 갈수록 기가 막혔다. 꿈이라고 쳐도 이상한 꿈이었다. 더 가관이었던 건 내가 나도 모르게 ‘으악’ 소리를 냈을때 그 인형이 거의 내 목소리와 같은 볼륨으로 그 소리를 따라했다는 것이다. 자기의 목소리를 자주 들어본적 없던 사람에게 녹음기에 녹음된 자신이 목소리가 얼마나 어눌하고 이상하게 들리는가. 인형의 약간 어눌한 발음이 나를 더 이상 놀랠 수도 없게 했고 나는 아무렇게나 잡히는 작은 종이상자에 인형을 넣어두고 다음 날 아침을 침묵으로 맞이했다.

밤새도록 멍하게 앉아 있다가 새벽에 상자를 다시 열었다. 거의 열시간을 꼼짝않고 앉아 있었는데 이상하게 졸리거나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어제까지 마음을 무겁게 하던 일들이 머리속에서 사라지고 말 그대로 구름위에 뜬 것 처럼 어디 모르는 곳에 여행 온 기분이었다. 상자는 비어있었다.

나는 잠을 자는 대신에 업무시간이 되자 마자 어제 하지 못한 얘기를 전하러 나섰다. 어느 때 보다 가볍고 정확한 목소리로 할 이야기를 하고 나왔고 안 그래도 가벼운 걸음이 더 빨라졌다. 길 모퉁이를 도는데 또 전단지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나는 전단지 사이에서 인형을 찾는 대신에 옆의 풀밭으로 살짝 돌아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