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없이 살고 싶다고 말하니 대답 대신 웃음소리가 났다. 간지럼 참기 깉은 일이다. 세상은 물으로 가득 차 있고 물은 모든 생명체를 돕지만 어떤 여름에는 습기에 여럿 죽기도 한다. 장면이 빨리 그리고 자주 바뀌는 영화라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다. 축가를 부르고 신랑의 동생이 와서 인사를 하고 갔다. 동생은 신랑보다 일찍 결혼했고 인사하는 모습에는 여유까지 보였다. 잔을 쏟거나 떨어뜨리거나 하는 일이 많아서 바닥에 늘 유리 조각들이 있었다. 청소를 조심히 하지 않으면 손에 박히기도 했다. 물걸레질이라도 하면 걸레를 빨 때 유리 조각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강에서 사금을 찾는 사람들처럼 유리 알갱이들을 쓸어 딤았다. 우주에서 보이는 지구를 하나의 감정으로 표현할 수 있는 존재가 나왔다. 그러나 그 감정은 어떤 언어로 적거나 발음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이런저런 죽어버린 가능성들을 머리속에서 굴려보다가 그만 하루가 다 가버렸다. 모래알 같은 나날들. 파도가 계속 밀려오는데 시원하기 보다 가슴이 턱 막혔다. 실제로 바닷가 사람들은 바다를 잘 보지 않는 듯 했다. 지구를 뒤덮은 물이 내 일생동안 쉬지 않고 내 위로 쏟아지고 있다. 물은 대체로 인류에게 호의적이지만 가끔은 그 깊이 만큼이나 완전한 절망을 가져오기도 한다. 네가 어렵게 내 손바닥 가득 그려준 꽃은 내 땀과 빗물에 금방 지워져 버렸다. 그날따라 일찍부터 기억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런 시간들이 내가 앉아있는 해안선으로 끊임 없이 들이친다. 왜 그렇게 감정적이었을까.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했다면 난 아마 지금 바다 대신 강 가의 돌들을 주우러 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손이 따끔거리는게 유리조각 때문인지 아니면 볼펜이 긁고 지나간 자국 때문인지 모르겠다. 디카페인 커피를 만들기 위해 카페인을 제거하기 위한 용매로 쓰이는 약품은 카페인을 흡수해 휘발되지만 간혹 남아있는 경우가 있어서 건강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어쩌면 지구를 보던 그 존재는 이런 것을 감정으로 보았을 것이다. 특히 태양이 지구에 가까워지는 시기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