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공사중이던 인공폭포가 가을이 오자마자 물을 뿜는다. 머금었던 물을 뿜느라 그런지 물의 기세가 자못 볼만하다. 이 학교에 다니던 친구와 함께 잠이 든 적이 있었는데 그 다음날 아침의 일이 아직도 현실의 일보다는 꿈 속의 일처럼 느껴진다. 장례식장 주차장에 근조화환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계속해서 밀려 들어왔다. 땀이 많이 나는 습한 날씨였는데 내가 흘린 것은 분명 식은땀이었다. 무언가 못마땅하기 시작하면 그 한계를 정할 수 없게 되는데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못마땅함을 그저 사고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비할 수 있는 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다릴때 우리는 누군가 대단히 지루하고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힘든 이야기를 해주길 원했다. 주저리 주저리 대단하지 않은 일을 맥락과 관계없는 시시콜콜한 디테일로 잔뜩 장식된 이야기가 제대로 끝나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관심도 없는 스스로의 이야기를 곁들여 하는 식의 지루함을 넘어 어떤 집중도 허락하지 않는 이야기. 이야기를 많이 해보지 않았거나 아예 남에게 관심없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 혹은 진정한 삶의 의미를 이미 찾았다는 사람들이 하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인생은 밖에서 보았을 때 재미있는 구석이 어디라도 한 군데는 있었다. 어렵게 찾을 필요도 없었다. 가끔 어랜기간 단조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때에도 어떻게 그렇게 오래 같은 모습으로 살았을까하는 흥미가 들었다.
주홍색의 일반적인 감 색깔말고 코에서 주욱 흘러내리는 코피같이 선홍색의 감들이 열리는 계절이었다. 무더위가 한 풀 꺾인 후였는데 그날따라 이례적인 폭염 경보가 내렸다. 연신 땀을 훔치기 바쁜 사람들은 버스가 도착하자 서둘러 버스에 올라탔다. 중간쯤 버스에 올라탄 사람이 좀처럼 버스 요금을 해결하지 못하고 입구 한쪽에서 가방을 뒤지고 있었다. 모두 올라탈 때까지 입구에서 가방을 뒤지던 사람은 버스가 출발하고도 계속 가방만 뒤적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홍조를 띄고 버스에 들어온 것과는 다르게 그 사람은 얼굴에서 어떤 더위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요금을 내지 못하고 가방을 뒤지고 있는 당황스러운 순간의 얼굴이 신비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벼운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모두가 매료되고 마는 오래된 초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한참 가방을 뒤지던 그 사람은 버스가 강 위의 다리를 건너려고 우회전을 하자마자 사라졌다. 그 사람이 들고 있던 가방도 함께였다. 나는 놀라서 버스 안을 둘러 보았는데 그 사람을 버스 안에서 본 사람은 나뿐이었는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에어컨 바람을 쐴 뿐 고개를 돌리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갑자기 사라진 사람들이야 역사적으로 많으니까 별 일은 아니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워낙 눈 바로 앞에서 일어난 일이라 한동안은 그 일을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도 그 일을 금방 잊어버렸다. 한 편으로는 그 이야기를 재밌게 누군가에게 해야한다는 부담을 벗게 되어 기뻤다. 그런데 어제 듣던 엘피판을 반대로 돌려 놓는데 그 사람의 표정이 떠올랐다. 엘피판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루브 숫자만큼이나 많은 표정을 동시에 짓고 있는 얼굴. 엘피가 제 자리에 들어가자 다시 노래가 흘러 나왔다. 믿을 수 없는 표정 생각을 조금 하던 나는 금방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그 표정을 너무 오래 심각하게 생각하느라 그 표정에 흥미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 표정이 한 순간 온 우주를 다른 빛으로 물들일만큼 강력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