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골이 상접해 겨우 숨만 쉬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손 밑에 와서 머리를 부벼댄다. 내 무겁고 둔탁한 손짓에 어릴 때는 많이 도망 다니고 깨물었었는데 지금은 가끔 만나서 음성을 전달하는 일만으로 공감대가 열린다. 기운이 없고 늘 누워있다.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오면 조용히 어딘가 숨어들어 가 조용해지면 다시 나온다. 입이 짧고 자주 게워 낸다. 하필 게워 내는 곳은 푹신하고 좋은 냄새가 나는 곳이다. 세탁기가 늘 돌아간다. 그렇다고 화장실에 자주 안 가는 것도 아니다. 가끔 챙기러 가면 비닐봉지가 묵직해질 때까지 화장실 청소를 한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일이 많고 하고 싶어도 하지 않는 일이 많다. 모두가 자신을 아낀다는 걸 알고 있다. 표정이 늘 담담하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타인에게 자신을 투영하는데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함께 살 때 우린 밤새 이야기를 나눴고 언제부턴가는 눈만 봐도 전하고 전해 받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를 생각해 주기 바란 적도 많았는데 그 생각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려준 적도 있었다. 이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과정이 자연스러워졌다. 언젠가 다른 사람들과도 겪을 일들을 미리 경험하게 해준다. 여러모로 영물이라고 생각하는데 특히 높은 곳에서 빤히 나를 쳐다볼 때는 뇌가 투명해지는 느낌이다. 어떤 예언을 위해 돈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조그만 발자국을 쫓아다니는 사람도 있다. 다만 건강하게 살다 갔으면 좋겠는데 이미 그렇게 건강하지 않다. 그저 특별한 고통 없이 마지막을 맞이하면 좋겠다. 대범해질 일도 메마를 일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