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생일 잔치를 준비하느라 분주해 보였다. 2층 창문 안에는 수많은 풍선들과 축하 문구등이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아이들의 축제인데 어른들이 더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았다. 아이들은 사실 공주옷을 입고 머리를 예쁘게 묶는 것 말고는 특별히 준비 할 게 없었다. 창문에 붙어 있던 풍선 하나가 떨어진다. 한동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다가 한참 후에 다시 창문에 붙는다. 한 번 떨어진 풍선은 금방 다시 떨어진다. 곧 아이들이 도착한다. 각기 다른 크기의 선물 상자를 들고 삼삼오오 그들의 부모와 함께 바쁘게 2층으로 올라간다. 오르는 발걸음이 그렇게 경쾌할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재채기가 났다. 한참 아이들 비명소리가 들린다. 곧 이어 사진 플래시가 번쩍 번쩍 터진다. 창문 너머로 이따금 머리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어른 한 명이 건물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운다. 담배를 다 피우기 전에 다른 어른이 내려와 그들은 함께 골목 안으로 사라진다. 얼마간 있다가 다시 나타난 그들의 얼굴이 한결 밝다. 아이들이 소리 지르는 정도는 아니겠지만 표정이 목소리 크기를 대신 하는 것 같았다. 약간의 표정 변화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 알아차리느라 힘들지만 금방 아이들 옆으로 돌아간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무언가를 먹고, 다투고, 아쉽다는 표현을 한다. 물론 만족스러운 순간들이 있지만 아이들은 그 짧은 순간을 워해 쉬지않고 노력한다. 코끼리 같은 대형 포유류가 종일 먹는 것에만 시간을 보내는 것 처럼 아이들도 짧은 만족의 순간을 위해 종일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생일잔치는 오후 내내 이어지다가 저녁이 되기 조금 전에 마무리 된다. 아이들이 같이 온 부모들과 하나 둘 씩 떠나고 분주했던 2층에는 거의 아무도 남지 않는다. 생일 당사자로 보이는 아이가 왕관을 쓰고 양 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계단을 내려온다. 따라 내려오는 어른이 짐을 들어주겠노라 제스쳐를 취해 보지만 손에서 절대 물건들을 놓지 않는다. 2층에 남아있던 어른이 창문에 붙어 있던 풍선들과 문구들을 떼고 있다. 표정이 보일듯 한데 초저녁 햇살이 강해 잘 보이지 않는다. 쓰레기 더미가 몇 번 오르내리고 이내 2층의 불이 꺼진다. 남아있던 어른이 건물 문을 잠그고 발길을 옮기자 확 어두워졌다.

플래시가 다시 터지기 시작한 건 가로등이 켜지고도 한참 후의 일이었다. 문까지 잠그고 간 건뮬의 2층에서 눈을 찡그릴 정도로 강력한 빛이 터져 나왔다. 처음에는 단발성으로 보이던 불빛이 차츰 빈도를 높여 가더니 한동안은 2층에 특수 조명을 켠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밝은 빛을 냈다. 삼 사십분 정도 이어지던 현상은 서서히 줄어들며 사라졌는데 그 잔상이 여전히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골목에서 사람들이 걸어 나오다가 거 건물앞의 이상한 밝음에 잠깐 멈춰섰다. 금방 떠나긴 했지만 잠깐 멈춰서느라 그들도 그 장면에 잔상을 남기고 말았다. 처음에는 다들 자기 할 말만 하느라 바빴다. 남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던 크게 상관없었다. 떠드는 것 자체가 자기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그 중에는 이미 듣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소리를 내는데 에너지를 다 썼다. 재미없는 소리를 내던 친구들은 언젠가부터 소리를 아예 내지 않게 되었고 듣기만 하던 어떤 친구는 아무도 내지 않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사이 이도 저도 아닌 친구들은 소리를 눈으로 내기도 하고 무릎으로 혹은 음식 맛으로 내기도 했다. 커피를 입에 머금고 있다가 뱉으니 방금 받고 온 치과 치료가 만회되는 듯 하다. 다만 커피를 마시면 이를 더 잘 닦아야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