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허물들이 비스듬한 가지마다 붙어있다. 지금은 매미가 소리뿐인 존재이지만 잠자리채를 들고 다니던 시절에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필요했던 많은 것들을 해소해 주었던 중요한 대상이었다. 나무 밑에 숨어서 매미가 다시 울기를 기다렸다가 잠자리채로 매미를 낚아챌 때는 나도 동물이 된 것 같았다. 속옷까지 축축하게 젖어도 매미를 잡는 행동 하나에 몇 시간씩 땡볕에 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잡은 매미들을 잠자리 통 안에 넣어 놓고 들여다보고 있으면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지금이야 성취감 정도로 부르고 말겠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의 입체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매미는 이제 소리일 뿐이다. 반질반질하던 눈알들과 매끈한 머리, 갈퀴가 달려 손가락을 파고들던 다리는 이제 없고 그냥 소리만 있다. 동네의 매미를 다 잡을 때까지 집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나도 없고 선풍기 강풍 소리와 거의 평면에 가까운 화면에서 나오는 비좁은 소리들만 있다. 나는 다른 집중의 대상들을 얻었지만 동시에 수많은 대상의 신비로움을 잃었다. 너무 당연한 변화이지만 밤새 몸이 터져라 소리를 내는 매미를 듣고 있으니 남 일 같지 않다. 괜히 매미 허물만 주워다 늘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