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위에 당근이 제 몸에 들어오는 칼들을 다 튕겨낸다. 칼들에 물결 모양으로 이가 나가고 그 틈으로 열차가 지나간다. 열차는 같은 길을 네 시간에도 가고 열 시간에도 간다. 시간을 한자로 세지 못하는 일이 이렇게 통쾌할 줄 몰랐다. 입 안 가득 채소를 담고 막 씹으려는데 계란이 철길 위로 통통 뛰어 온다. 몇 개는 뛰다 이미 터졌고 몇 개는 그새 익어 버렸다.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어차피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갑작스런 단어 하나에 울고 잘못 번역된 호칭에 위안을 받는다. 어차피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는데 계란과 야채들이 햇빛을 받아 강물위에 윤슬같다. 우적우적 씹어먹으면 기차소리도 나고 교회 종소리도 난다. 어렸을 때는 날으는 자동차를 만들고 싶었다. 그건 사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내가 만들고 싶도록 내 주변에 모든 환경을 연출했던 것이었다. 나는 비행 기능을 가진 자동차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냥 날고 싶었던 것 같다. 상상 속에서, 꿈 속에서, 남들의 이야기 속에서 점들을 찾아서 실로 이어가다 보니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세상이 생겼다. 차밭에 누나가 그 세상을 더 빈틈없이 빨갛게 칠하라고 해서 창문을 열었다. 날벌레들이 자주 들어오지만 방충망은 없다. 없는 방충망의 작은 구멍 하나까지 다 빨갛게 칠하고 나니 빨간색이 하얀색처럼 보인다. 그제야 세상이 좀 편하게 보인다. 야채와 계란은 금방 소화가 되어서 붉은색 음식이 생각난다. 붉은색 음식은 나를 마흔 살씩 늙게 만들기도 하고 열 걸음 거리도 안 떨어지게 하기도 한다. 사십. 십. 십오. 이십. 이십오. 열차가 아침처럼 소리를 내며 귓등을 타고 간다. 삼십오가 어디 갔는지 안 보인다. 저번주에 갔던 인도 식당의 커리 위에 윤슬이 보인다. 아니 요거트가 두세 줄 보인다. 사실 그냥 붉은 커리인데 나머지는 내가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