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꼿하게 서 있다. 꼭 나무 같다. 새들이 자꾸 날아와 앉는다. 새들의 깃털이 축축하다. 물에 비친 나무에는 새들이 없다. 그저 그림자뿐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등 뒤로 지나가고 물 위에는 바람이 불어 표면이 조용히 일렁이기 시작한다. 꼭 이래야만 혹은 저래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차를 따라 주던 사람의 미소가 미로 같다. 그저 한 번이라도 솔직해지기 위해서였다. 달고 찐득한 말들에 잠겨 질식하기 직전. 발버둥. 가만히 있어야 했다. 꼭 나무같이. 몇십 년 전의 이야기가 아직도 제일 재미있다. 지금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그때는 뭐든 처음이어서였다. 까마귀가 두 마리가 걸어 다니는데 제법 진지하다. 각자의 노선을 지키면서 서로가 놓친 부분을 반드시 확인하고 지나간다. 따로 또 같이. 깃털이 축축하고 햇빛에 비친 부리가 고흐의 그림처럼 번쩍인다. 늦은 밤을 제외하고는 새들이 쉬지 않고 대화한다. 새들이 앉을 나무가 없는 곳도 있다. 그런 곳에서는 새들이 나무가 아니라 기차역 안에 둥지를 튼다. 단 한 번의 그림을 위해 너무 많은 것들을 바꿔야 했다. 생물은 대체로 회복력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손상은 영구적이다. 들판을 가득 메웠던 인파가 삽시간에 사라졌다. 누가 내 눈에 마술을 부린 것이 툴림없는데 이곳에선 수많은 사람이 사라진 적이 있다. 기분 좋게 바람이 불고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꼭 나무 같다. 나무들에 둘러싸여 나무들이 내는 냄새를 맡는다. 달거나 너무 강한 냄새 대신 감정에 가까운 전기 신호가 뇌에서 코로 먼저 도달한다. 코끝이 시큰해지고 괜히 고개를 하늘을 향해 든다. 코가 하늘을 향하는 모습이 꼭 나무 같다. 드문드문 넘어진 나무들이 개울에 코를 박고 있다. 빽빽하게 하늘을 가린 나무가 내 발아래 처박힌 꼴을 보는데 하품이 나왔다. 아이들은 아는 얘기를 듣는 것을 가장 힘들어한다. 그런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첨벙 소리가 나더니 물 표면이 다시 흔들린다. 흔한 일인지 물에 떠 있는 오리 몇 마리는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 그래도 염세에 빠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