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의 좁은 틈만 찾아 다녔는데 틈은 벌어지고 벽은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다. 빛이 새어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눈이 부셔 계속 손으로 눈을 가리고 다니는 중이다. 벽의 물성이 흐물거리자 나는 부분 부분을 발로 차기도 몸으로 밀기도 하며 벽을 괴롭힌다. 벽이 내게 했던 말 중에는 나를 죽을 때 까지 괴롭게 할 말도 있었다. 처음 들었을 때 한 마디도 못하고 얼어붙어 버렸는데 내 마음의 일부는 늘 얼어있는 그대로이다. 창문의 커튼을 열듯이 벽을 걷어 제쳤는데 막상 열어보니 빛은 일상적이고 벽 뒤의 공간은 여지껏 있던 공간과 다르지 않다. 나는 왜 그렇게 벽에 갇혀 있었나. 벽이 나를 가둔 적 없고 빛이 나를 피한 적 없다. 그렇다고 내가 애쓰지 않은 것도 아니다. 지나고 나면 다 형편없는 얘기다. 실개천을 따라 가다가 다리 밑으로 지나가라고 했다. 대번에 샛길을 찾은 것에 신이 났다. 걷다 보니 역시 다리가 보였는데 그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마침 나뭇잎이 쭉 검게 깔려 있는 부분이 보였다. 그쪽이 길인가 싶어서 발을 딛는 순간 흙탕에 발이 빠져 버렸다. 세탁소에 맡긴 후 처음 신는 신발이었다. 어쩔까 고민하다가 이왕 이렇게 된거 조금 더 개천 쪽으로 내려가 보기러 했다. 개천으로 내려갈수록 젖은 풀들이 경사와 더불어 내가 발 디딜 곳을 줄여나갔다. 뻗어 있는 나뭇가지들을 잡고 겨우 개천으로 내려왔다. 이미 발이 축축해져서 앝은 개울을 그냥 밟고 걸었다. 손에는 잡고 내려오다 끊어진 나뭇가지를 쥔 채였다. 그리고 만난건 다리가 아니라 도로 아래에 있는 작은 수로였다. 미끄러운 비탈을 다시 수없이 미끄러지며 올라오다가 이번에는 바지까지 다 젖어버렸다. 무슨 조난이라도 당한 꼴으로 다시 숲길로 돌아오는데 저쪽에서 도시적인 가벼운 옷차림의 여자가 개 산책을 시키고 있었다. 대비가 확실했기 때문에 일부러 눈을 피하고 서둘러 다시 숲길을 걸었다. 다행히 개가 잠시 멈추고 냄새를 맡느라 더 이상 다른 맞닥드림 없이 숲을 빠져나왔다. 천장이 높은 곳에 가면 괜히 박수를 쳐본다. 소리가 기분 좋게 울리고 나는 또 음악으로 공간을 휘저을 생각만 한다. 아직 발이 축축한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