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대출반납 일자 안에 책 한 권을 다 못 읽는 나날이다. 이럴 땐 여러 번 읽은 시집에 담긴 글자들을 미술관 그림 보듯이 오래 들여다보는 것이 낫다. 어설피 긴 글을 읽어봤자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사진 같은 말을 하려고 몇 마디 떠들었는데 뭉뚝한 펜으로 종이 한 장을 마구 그은 선으로 억지로 채운 모양밖에 안 되었다. 무언가를 쉽게 설명하고 전달할 수 있었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미로 같은 글 속에서 늘 어리둥절하지만 그래도 글을 쓰는 이유는 명료해지기 위해서다. 다만 무엇을 전달하려고 명료해지고자 하는지는 모른다. 없던 알러지가 극성인데 애초에 알러지가 없는 위협에 대처하다 생기는 상태이므로 몸이 어떻게 반응하던 다 허상이다. 그런데도 열심히 아픈 흉내를 내는 것 보면 몸은 원래 아프고 괴로운 상태를 반가워하는 것 같다. 햇살은 이미 피하고 싶을 정도로 뜨겁고 겨우내 맨얼굴이던 창문들이 하나둘 가리어진다. 그게 커튼이든 블라인드이든 애초에 가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라 가리는 일을 할 때가 가장 자연스럽다. 아주 투명한 유리창을 만들어 놓고 코팅을 하고 커튼을 친다. 그리고 미세먼지 가득한 창밖을 보면서 뿌옇다고 한마디씩 한다. 우리는 모두 어디선가 만났던 사람들의 과거와 미래이다. 다만 어제 만난 너의 얼굴도 잘 기억이 안 난다. 분명히 얼굴을 기억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그 일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 기억이 잘 안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