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안의 물고기가 터벅터벅 걸어 나와 내 옆 테이블에 앉는다. 말없이 잔이 오르내리고 우리는 몸짓과 표정으로 대화하기 시작한다. 뚝배기 안의 순대에서 당면들이 치열하게 부대끼고 나는 일부러 하나씩 터트리며 그들의 노력을 무마시킨다. 물고기는 뜨거운 국물을 먹느라 입주변이 허옇게 익었다. 내가 키우던 물고기는 커다란 플라스틱 과자통에 살았다. 임시로 넣어둔 것이었는데 이 핑계 저 핑계로 계속 그 통안에서 살게 되었다. 정화장치가 없어서 사료와 분비물 찌꺼기로 통 표면이 반투명이 되면 물을 쏟아내고 물고기를 옮긴 다음 통을 박박 닦아주었다. 몇 번 물고기가 물에 딸려나와 배수구에 빨려 들어갈 뻔 한 적이 있지만 우리집 배수구는 늘 상당 부분 막혀있었고 물고기가 모험을 떠나기 전에 건져 올릴 수 있었다. 물고기는 이름도 있었고 스스로 지키는 루틴 같은 것도 있었는데 예컨데 내가 집에 돌아와 불을 켜고 부산을 떨어도 원래 속도를 벗어나 유영하는 법이 없었고 사료를 떨어뜨려 주어도 곧장 올라와 먹는 법이 없었다. 대체로 생기없는 인상이었지만 반대로 너무 많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통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보이기도 했다. 술을 많이 먹거나 안좋은 일이 있어 혼자 있고 싶을 때 천천히 움직이는 물고기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조금 풀리곤 했다. 그러던 하루, 새벽부터 근무를 시작해서 자정을 훨씬 넘은 시간에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날이었다. 하루종일 초콜렛 바 한 두개 빼고는 아무것도 먹지를 못해서 속이 뒤집어져 괴로웠다. 너무 피곤했지만 잠이 들지 않았고 이내 컴퓨터 앞에 앉아서 그냥 괴로워 하고 있었다. 그때 컴퓨터 화면 옆에 어항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어김없이 천천히 움직이던 물고기가 멈춰서서 나를 똑바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내 물고기가 유창한 외국어로 나에게 무언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그 소리가 크지 않아 집중해서 듣느라 물고기가 말을 하는 것도 잊어버렸다. 드문드문 들리는 단어들은 ‘빛’, ‘굴절’, ‘어지러움’ 같은 것이었는데 무슨 얘기인지는 몰라도 심각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그냥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얘기를 듣던 도중 쏟아지는 잠에 나는 책상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고 그날 이후 물고기는 다시는 나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그저 하던대로 느리게 헤엄칠 뿐이었다. 객지 생활을 마치고 전철로 한강을 건널 때 였다. 물을 내다보고 있는데 검은 물 색깔이 내 눈을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그때 윤슬이 수면위를 뒤덮기 시작했다. 반짝거리는 모습이 어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