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당했던 제일 형편없는 가스라이팅은 그릇에 대한 얘기였다. 떡잎과 그릇이 모두가 나를 다 아는것 처럼 대하게 해주었고 그 기대는 부응이나 초월에는 관심이 없고 실망에만 환호하는 듯 했다. 애초에 이런 그릇이니 저런 그릇이니 하다보니 나는 그 무엇도 담고 싶지 않지만 담아야 하는 존재를 고민하게 되었다. 담는 일과 옮기는 일이 같지만 한 쪽만 보게 되었고 안경점 주인이 되고 싶었던 나는 학교 청소의 대가가 되었다. (분명 청소의 경험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닦아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담을 넘으며 느낀 해방감과 죄책감이 씨름하기를 포기했을때 얼마나 학교의 정문이 높았으며 그걸 타고 올라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던 내가 얼마나 낮게 떨어졌는지 모른다.
어떤 형편없는 일을 앞둔 누군가가 그 시절 나에게 공부는 중요하지 않고 대충 즐겁게 살으라고 했을 때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때는 한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에 계시든 건강하시길 빈다.
결국 부조리함을 손가락질 하는 끝에 내가 있다. 내가 부조리였는데 내게 보이는 부조리를 참지 못한다. 이 자체가 부조리인데 부조리는 부조리를 만들거나 공감하는 사람들을 위해 늘 존재한다. 어쩌면 그릇 얘기가 다 맞는 얘기일 수도 있다. 내 그릇 위에는 먹은 음식이 먹던 음식처럼 늘어져 있고 그 사이 사이 다른 음식들이 너저분하다. 물병자리는 논리적이어서 조심해야한다. 나는 O형이라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