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공기가 코 점막을 두드린다. 두텁게 쌓인 먼지가 서서히 떨어져 나간다. 꽃이나 나무잎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토바이와 택시의 이야기이다. 다른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이 미리 각자의 집으로 사라지는 것에 비해 우리는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도 서로를 느낄 수 있다. 건물이 울리는 소리와 대로의 소리에 집중하면 내가 내는 소리가 하찮아진다. 한빔중에도 그렇다. 거리는 그 공간 자체로 건물은 그 크기와 높이 자체로 울림을 내고 오전과 오후 내내 사람의 소음에 시달린 나는 혼자 정박에 한참 어긋난 리듬을 연주한다.
크기만 하고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대체로 그들은 뼈 뿐이다. 뼈를 보고 여러 이야기가 오가고 결국 하나의 가설이 진실처럼 받아들여지지만 그 여부를 가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울음소리같은 노래를 좋아하지만 바른 말을 하는 정직한 말투는 지루해 한다. 진실보다는 가설이 많이 팔린다. 매체를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이를 목적을 위한 음악처럼 다룬다. 인위적인 긴장과 해결을 미리 정해두고 모티브가 가진 의미를 초등학교에 처음 갔을 때 받은 알림장처럼 취급한다. 철저히 개인의 세상에 사느라 타인의 한 마디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애초에 그럴 여지가 차단 되었을 수도 있닼 이제 누가 피해자인가.
자전거가 택시보다 빠르게 지나가고 냄새보다 기억이 먼저 뇌에 닿는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나를 안심시키던 사람들은 다 큰 뼈를 남기고 모래속에 파묻혀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의 이름은 ‘모래의 책’이다. 책의 길이가 끝이 없기 때문에 그 내용도 모든 것을 포함한다. 지식이 주는 쾌감이 술병 뚜껑을 여는 순간이라면 지혜가 주는 깨달음은 노인이 자신을 닮은 아이를 보고 하는 예언과 같다. 애초에 열고 싶지 않은 상자였을까. 어떤 상자들은 여섯개의 직사각형을 아주 오래 유지하고 있었다. 상자위의 요란한 스티커들이 무언가 전달하려고 하지만 막상 전달되는 정보는 거의 없다. 아무리 진한 색으로 의미를 전달하려고 해도 먼지와 부식으로 원래의 의도는 남아있지 않다. 상자들의 색은 아마 도시에서는 길가에 자주 보이는 꽉 찬 재생의류함의 색이다. 얼마간의 방치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내구도 외에 아무 신경을 쓰지 않는다. 상자 안에 가득한 먼지는 내부에서 만들어졌고 상자는 조용히 부풀어 오른다. 간혹 잘 못 건드린 상자가 ‘펑’ 하고 터지는 경우가 있는데 내용물은 얘기할거리도 못되는 것이다. 잘려나간 부분이 많은 서류더미, 이염이 많이 된 의류, 빛이 바래다 못해 허옇게 뜬 사진 같은게 많이 나왔다. 손상이 많이 되어서 사진 속 인물들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하나 같이 다 사진이 찍히는 방향으로 얼굴을 향하고 있다. 인물사진은 기록이 아니고 어떤 풍습이었던것 같다. 형태는 사람이지만 사람을 정의하는 어떤 특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