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열고 싶지 않은 상자였을까. 어떤 상자들은 여섯개의 직사각형을 아주 오래 유지하고 있었다. 상자위의 요란한 스티커들이 무언가 전달하려고 하지만 막상 전달되는 정보는 거의 없다. 아무리 진한 색으로 의미를 전달하려고 해도 먼지와 부식으로 원래의 의도는 남아있지 않다. 상자들의 색은 아마 도시에서는 길가에 자주 보이는 꽉 찬 재생의류함의 색이다.
얼마간의 방치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내구도 외에 아무 신경을 쓰지 않는다. 상자 안에 가득한 먼지는 내부에서 만들어졌고 상자는 조용히 부풀어 오른다. 간혹 잘 못 건드린 상자가 ‘펑’ 하고 터지는 경우가 있는데 내용물은 얘기할거리도 못되는 것이다. 잘려나간 부분이 많은 서류더미, 이염이 많이 된 의류, 빛이 바래다 못해 허옇게 뜬 사진 같은게 많이 나왔다. 손상이 많이 되어서 사진 속 인물들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하나 같이 다 사진이 찍히는 방향으로 얼굴을 향하고 있다. 인물사진은 기록이 아니고 어떤 풍습이었던것 같다. 형태는 사람이지만 사람을 정의하는 어떤 특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