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줄을 간다. 기타 줄은 피로가 쌓이면 울림이 줄어든다. 울림 없는 줄은 그 소명을 상실했지만 기능 면에서는 절대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 자리한 줄들보다 더 따뜻한 톤과 안정적인 튜닝을 내새우며 그 유세를 가능한 한 길게 가져간다. 처음 줄이 자리 잡을 때 부리는 고음역대의 까탈은 줄어들고 줄이 어느 정도 늘어난 후에 저음으로 보상된다. 실제로 모든 리허설 이후 줄을 갈아야 하는 사람과 줄이 끊어지지 않는 한 절대 줄을 갈지 않는 사람이 있다. 또 줄을 감을 때 충분히 줄을 남겨두고 감기 시작하는 사람과 즉시 튜닝이 가능한 짧게 줄을 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각 줄의 굵기를 전혀 상관하지 않는 사람과 줄을 무조건 같은 세트의 굵기로 갈아야 한다는 사람이 있다.
기타를 가지고 있을 수 없을 만큼 극단적인 집단생활을 하던 시절에 교회 강단 뒤 창고에 숨어있던 기타를 마구 친 적이 있었다. 작정을 하고 쳤지만 치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 기타가 가끔 생각난다. 녹슨 1, 2번줄, 열기에 당겨진 3, 4번줄, 그리고 튜닝 그 자체를 거부하는 5, 6번줄이 기억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참 쳤을 때 내가 한참 치고 있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멀쩡한 기타였다.
가장 멀쩡하고 가장 좋은 울림을 가진 기타는 어딘가 아무의 손에 닿지 않게 숨어있다. 일례로 나는 서울에 있는 누군가의 다락방에서 모든 기타의 조상을 보았다. 하지만 무슨 소용인가. 기타 줄을 갈면서도 떠들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비슷한 모양으로 기타들을 찾아내고 그 소리는 내 생각과 다르다. 연주자를 탓하기 전에 기타를, 기타를 탓하기 전에 기타 줄을, 기타 줄을 갈기 전에 피크를, 그리고 피크를 탓하기 전에 손톱을 갈아낼 정도의 인류애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