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에게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라 그랬다. 어떻게든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할 것 같았고 결국 나라는 사람보다 그 이야기가 더 중요해졌다. 사람들은 그 이야기에 대한 말들은 했지만 처음에 누가 그 얘기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간혹 누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 정도의 감탄사로 넘어가곤 했다.
구름이 워낙 갑작스럽게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불이 난 줄 알았다. 마침 저녁노을이 어지럽게 빛을 쏘아대고 있었고 난반사 된 빛줄기들이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것 같았다. 사실 머리로는 그게 그저 습한 날씨에 흔한 노을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손으로는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갖가지 찬사를 쏟아내었다.
골목을 들어서자 짠무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 냄새가 너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썩어가는 쥐들이나 출처를 모르는 오물 웅덩이들이 만들어 내는 냄새들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평생 그렇게 많은 드럼통을 본 적이 없다. 파란색 플라스틱 드럼통이었는데 단 하나도 원래의 색을 유지하고 있지 않았다. 짠무가 가득 담긴 통들이 끝없이 늘어선 모습이 마치 열병식 같았다. 상대를 모르는 적대심이 골목을 가득 메웠고 드문 드문 보이는 상인들은 사열을 하러 다니는 장군들 같았다. 어차피 다 죽는다고 하지만 짠무들은 희극 보다는 비극을 향해 숙성되는 것 처럼 보였고 문제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모여드는 도전자처럼 보였다. 겨우 정신을 잡고 골목을 걷는데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각 상점의 상인들은 각각 다른 연극을 연기하고 있었다. 드럼통의 열병식이 overture였다면 점포마다 완전히 다른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scherzo로 시작하는 교향곡 같았다. 다만 그들의 한가지 공통점은 몰입한 배역의 주제였다. 다들 끝없는 짠무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 몰입도와 배색, 질감과 영향력 등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각자에게 주어진 제한적인 무대에서 선보이고 있었다. 기억할 수 없는 길이의 거리를 한참 걷고 나니 드디어 시장끝이 보였다. 영원은 처음부터 상대적인 개념이다. 영원같은 시간을 보낸 사람에게 오는 유일한 보상은 영생이 아니다.